윤지오 증언13번째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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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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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사망 10주기 《13번째 증언》 서평권력층 비호한 경찰과 검찰을 낱낱이 고발하다

김은영

노동자연대 280호 | | 주제: 공식정치, 차별, 여성, 국가기관


고(故) 장자연 씨의 사망 10주기였던 지난 3월 7일, ‘장자연 사건’과 리스트의 목격자인 윤지오 씨가 《13번째 증언》이라는 책을 냈다.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고 책까지 펴낸 윤지오 씨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13번째 증언》은 윤지오 씨가 장자연 씨와 1년 남짓 같은 연예인 소속사에 있으면서 겪은 비참한 경험을 진솔하게 쓴 책이다. 무엇보다 장자연 죽음 이후 자신의 일관된 12번의 진술을 깡그리 무시하고 권력층을 비호한 검찰과 경찰을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다.

《13번째 증언》 윤지오 지음 | 가연 | 2019년 | 252쪽 | 13800원


윤지오 씨는 연예계에 입문하고 싶어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빨리 연예인이 되고 싶은 마음에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열입곱의 어린 나이에 연습생이 됐다. 부푼 꿈을 안고 연예인 지망생이 됐지만 생활고가 극심했다. 그래서 커피숍에 나가거나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 터널의 검은 때를 벗기거나 벽돌을 쌓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고단한 생활을 해야 했다.

여러 소속사를 옮겨다니며 갖은 고생을 한 끝에, 몇몇 유명 연예인과 장자연이 소속된 기획사와 계약을 맺었다. 기획사의 결정과 지시를 충실히 따라야 하고, 계약금은 3년에 300만 원인 반면, 위약금은 1억 원에 이르는 등 형편없는 계약이었다. 약속했던 월 50만 원의 활동비는 30만 원만 줬고, 구석구석 독소조항이 포함된 ‘노예계약’이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기획사 대표는 지인을 소개시켜 준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윤지오 씨를 ‘호출’했다. 방송 활동을 빙자한 곤욕스런 술자리에 불려나갔고 성추행을 당하기도 했다. 윤지오 씨는 “위약금 1억 원이라는 계약조건이 나나 자연 언니에게 얼마나 많은 부담을 주었는지, 그래서 대표의 부름을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 하고 말한다.

윤지오 씨는 소속사 대표의 생일파티에서 있었던 장자연 성추행 사건, 장자연 본인에게 직접 들은 소속사의 부당한 대우, 장자연 문건을 보고 읽은 기억 등 당시 자신이 목격하고 직접 경험한 것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이 책을 보면 어떻게 권력층들의 거래에 여성들이 대상으로 동원되고 끔찍한 성범죄가 저질러지는지, 그 추악한 단면을 알 수 있다.

코미디보다 후진 엔딩

장자연 씨의 죽음 직후, 윤지오 씨는 장자연 성추행 사건과 장자연 문건과 관련해 12번 증언을 했다. 그러나 윤지오 씨의 증언에도 권력층의 핵심부는 처벌받지 않았다. 

이 책에서 윤지오 씨는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당시 상황을 생생히 그리면서 경찰과 검찰의 수사과정의 문제점을 낱낱이 드러낸다. 가령 검찰은 윤지오 씨가 수사 초기에 장자연 씨를 성추행한 가해자를 지목하는 과정에서 구두 조사로만 진행한 탓에 잠시 혼동한 것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잘 기억하지 못하는 가해자의 구체적인 신체 특징을 설명해 보라고 하는 등 윤지오 씨 증언의 신뢰성을 깎아내리려 갖은 방법을 썼다. 

반면 술자리 접대 등 강요죄 공범 혐의를 받던 권력자들은 모두 증거 부족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당시 검찰의 수사결과는 ‘피해자는 사망했고, 피의자는 부인한다’는 소리였다. 실소가 절로 터져나오는 코미디보다 후진 엔딩이었다.”

“당시의 수사는 [20대 초반의] 어린 내가 보기에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윤지오 씨는, 검·경이 장자연 문건이 있는데도 죽음의 핵심 배경은 건드리지 않았고, 성상납은 기껏해야 폭행 및 명예훼손 사건으로 은폐·축소됐다며 분개했다.

이후 윤지오 씨는 평소 자신을 ‘애기야’라고 부르며 다정하게 대했던 장자연 씨를 두고 문제의 소속사를 먼저 빠져 나온 미안함과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그리고 장자연 씨처럼 구역질나는 성접대 제안을 받은 뒤 커다란 정신적 충격과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한다. 생기발랄하고 씩씩했던 윤지오 씨는 우울증으로 고통받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가해자인 권력층과 이들을 비호한 경찰과 검찰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뻔뻔하게 살아간 반면 진실된 증언자는 죽음의 문턱까지 가야만 했던 부분을 읽으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윤지오 씨는 오랜 고통과 절망감을 이겨내고 가해자가 처벌받기를 바라면서 또다시 용기 있게 나섰다.

“사회 고위층이 연루된, 위계와 권력이 관련된 성 접대 사건에서는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불가사의한 상황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됐다] ... 진실이 거짓이 되어버리는 세상 앞에서 침묵하고도 싶었다. 하지만 죽음으로 말하려 했던 언니의 고통이 다시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그 기억들을 피하지 않고 다시 마주했다.” 

이 책을 보면 윤지오 씨는 미투 운동 등 성차별에 분노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진 덕분에 다시 힘과 용기를 얻은 듯하다. 추악한 권력층에 맞서 성차별 항의 운동이 커져야 하는 이유이다.

윤지오 씨의 바람처럼, 그의 13번째 증언으로 거짓 속에 묻혀 있던 진실이 세상 속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바란다. 이번에는 그의 증언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분명 가해자는 존재하고 끝까지 처벌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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