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빛 창립취지


 

<지상의 빛> 은 꺼지지 않습니다


<꽃보다 남자> 출연을 마지막으로 저의 언니 장자연 배우는 연예인의 꿈을 꽃피우기도 전에 경기도 분당 이매동의 자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언니가 연예인의 꿈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 남긴 문건에 언니는 데뷔 후에 욕설, 협박, 폭력만이 아니라 술접대 강요와 성상납 강요에 시달려 왔다고 썼습니다. “저는 힘 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는 이 땅의 연예노동자들이라면, 아니 이 땅의 여성들이라면, 아니 이 땅의 피해자들이라면 누구나 겪고 있을 고통과 열망을 압축적으로 대변합니다. 그러나 언니는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자신을 덮친 너무나 이른 죽음의 그림자를 피하지도 못했습니다. 향년 27세였습니다.


저는 2009년 3월 15일부터 2019년 3월 28일까지 장자연 언니가 왜 죽게 되었는가, 누구에 의해 죽게 되었는가를 밝히기 위해 공식 수사기관이나 조사기관에서만 열 여섯 차례에 걸친 증언에 임했습니다. 그 10년간 경찰, 검찰, 법정, 그리고 과거사조사단과 함께 한 시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심야에 불려가 새벽에 귀가하는 날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아무 죄도 짓지 않은 제가 참고인으로 불려가 단지 증언을 했을 뿐인데 이 과정에서 겪은 노골적인 혹은 은밀한 모욕들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적지 않은 수사관들이 증언자를 피고인 다루듯이 했습니다. 또 수사관이 가해자와 동일한 시선으로 질문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를 두렵게 한 것은 취재라는 이름으로 집요하게 찾아와 가해자들의 입장에서 질문을 퍼붓는 일부의 기자들이었습니다. 그것은 저에 대한 실제적인 위협이었습니다. 조사를 받고 돌아갈 때 미행을 하는 언론사 차량도 있었습니다. 어디서 알아냈는지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거는 기자도 있었습니다. 이유도 없이 꽃다발을 보내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SNS에는 폭언과 협박의 글들이 댓글로 달렸습니다. 이런 위협들 때문에 조사를 받을 때는 가명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방송국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을 때면 심장부터 두근댔습니다. 과거사진상조사단이 한국으로 와서 증언을 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도 두려움 때문에 선뜻 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 사회를 바꾼 촛불혁명과 미투운동, 그리고 청와대를 향한 청원운동이 없었다면 저는 감히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무사히 열 여섯 번의 증언까지 마쳤다고 생각했지만 저를 기다린 것은 애쓴 후에 찾아오는 만족과 평온이 아니라 2차 가해의 피비린내나는 마녀사냥과 손가락질이었고 시민사회로부터 저를 내쫓는 발길질이었습니다. 그토록 긴 시간동안 문득문득 모습을 나타냈던 그 가해의 그림자들이 욕설, 협박, 사이버폭행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났고 줄을 잇는 고소고발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장자연 언니가 “너는 발톱의 때만큼도 모른다”고 했던, 아마도 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 바로 그 폭력이었음을 실감으로 느꼈습니다. 저는 졸지에 ‘용기 있는 증언자’에서 ‘국민을 기망한 사기꾼’으로 추락해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저는 기어코 일어나고자 합니다. 국가는 지난 10년간 스스로 나서서 증언자의 안전을 돌봐 준 적이 없습니다. 2018년까지 9년 동안 저는 국가로부터 어떤 보호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저에게 한국으로 와서 증언을 해 달라고 간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왕복항공권만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반 증언자는 2~3만원의 교통실비만을 준다며 저는 우대받는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2019년 3월 연장 조사때에는 전적으로 저의 사비만으로 증언해야 했습니다. 식비, 숙비, 경호비, 교통비, 항공비 모두 저의 사비로 충당해야 했습니다. 대개의 증언이 그렇듯이 저의 증언도 가해권력자들의 부당행위와 범죄혐의를 관계 당국 앞에서 증언하는 것이었고 이러한 증인에게 예방폭력과 보복폭력이 예상된다는 것은 서울지방경찰청장 님도 알고 있는 사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스마트워치를 지급받고 숙박비와 경호원을 제공받게 된 것은 증언자에 대해 아무런 신변보호조치도 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저의 항의와 이에 동조한 국민 여러분들의 압박을 받아 사후약방문 식으로 취해진 조치였습니다.    


그마나 촛불정부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라도 보호조치를 받았다고 스스로 위안해야 하는 것일까요? 설상가상으로 국가가 증인을 보호해 달라는 저의 청원과 요구는 국민을 기망하기 위해 위협을 과장한 것이라는 참으로 가당찮은 거짓말 화살을 맞고 있습니다. 타인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증언을 해 본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입에 담지 못할 엄청난 모욕의 말입니다. 국민 여러분들께서 ‘당신의 증언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당신의 몸을 지켜야 나라가 산다’며 저의 경호를 위해 십시일반으로 자원하여 후원해 주신 그 과분한 돈들도 ‘후원사기’라는 가당치 않은 덫에 씌워져 단 한푼도 필요한 경호비에 쓰지 못한 채 통장에 얼어붙은 그대로 있습니다. 제가 체험한 것은 대한민국이 그 어느 곳보다도 범죄가 범람하여 진실에 대한 증언을 필요로 하는 사회이면도 진실을 말하는 증언자를 일회용 컵처럼 쓰고 버리는 모순된 사회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누가 대한민국을 위해 증언을 하려 할까요? 증언자가 피해자 이상으로 가혹한 2차, 3차 가해를 당하는 것이 제 사례로 뚜렷이 입증되어 버린 지금 감히 누가 증언의 용기를 내려고 할까요?  

  

그러나 저는 다시 마지막 용기를 짜내어 여러분들이 내밀어 주시는 손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 보려고 합니다. 비록 제 한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상태이고 후원금의 ‘후’자만 들어도 온 몸이 떨려오지만 제 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라도 뜻을 함께 하시는 분들과 힘을 합쳐 초심을 살려 보고자 합니다. 이땅의 삶을 어둡게 만드는 다양한 범죄혐의들에 대한 증언을 하고도 국가로부터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해 고통받는 목격자, 증언자, 제2, 제3의 피해자들이 실질적으로 보호와 조력을 받아 남들과 마찬가지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바로 이런 목적으로 먼저 뜻을 모은 분들과 비영리단체 <지상의 빛>을 창립하여 아직은 보잘것없는 얼굴을 여러분 앞에 내놓습니다. 여러분들의 회비와 후원이 피해와 증언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갈구하고 몸부림치는 분들을 구조하는 빛살이 될 수 있도록 <지상의 빛>에의 동참, 증여의 연대, 그리고 따뜻한 성원을 기대하겠습니다. 우리의 이 발걸음이 이 땅의 연약한 민주주의를 키우는 한 알의 밀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9년 4월 1일 처음 작성

2019년 8월 15일 첫 수정


<지상의 빛> 창립자 겸 대표 윤지오